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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6/09 이름이란 ... 삶의 어떤 의미 일까?
- 2010/03/18 그를 쳐다보며 방향을 바꾼다.
- 2010/03/18 “자기 발로 브레이크를 잡는 건 아닌가요?”
- 2010/03/18 하늘에 길을 묻다
- 2010/03/18 미래, 지식, 사람, 상상
- 2010/01/05 한국 컴패션 인터뷰
- 2009/11/16 나의 가장 소중한 기도와 예배의 삼겹줄 가족... 나, 아내, 자녀
- 2009/09/23 사람이 사람을 알아가는 것이란?
- 2009/08/31 특별함, 그리고 예비하심
- 2009/08/31 탕자의 본명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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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ollehsoccer.com/?movie_no=cf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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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후, 후, 후”
거친 호흡 소리에 맞춰 빙판을 가릅니다.
“싸악, 싸악, 싸악, 싸악”
힘차게 휘두르는 팔과
온 힘을 다해 지치는 다리 아래로 얼음은 밀려 나갑니다.
관중들 소리는 점점 더 커가고
이대로만 가면 금메달입니다.
경기장을 17바퀴 돌았고
앞으로 8바퀴 남았습니다.
아웃코스로 빠져나가려는 찰나
코치님의 인코스 사인이 났습니다.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했지만
사인에 따라 인코스로 갈아 탔습니다.
그것으로 모든 것은 끝났고, 세상은 무너져 버렸습니다.
벤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10,000미터 경주에서
6,800미터 통과 순간,
2등 보다 4초 이상 앞서있던 스벤 크라머 선수.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했고,
가장 빠르게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그의 등수는 2등도 3등도 아닌 실격이었습니다.
"모두 내 실수고 책임이다. 내 인생 가장 나쁜 일이었다."
코치인 게라드 캠케스는 자신의 잘못을 고백합니다.
선수가 아무리 빨리 달려도
방향을 알려주는 이가 실수를 하면 결과는 끝장입니다.
아버지가 삶을 똑바로 살아야 하고
리더가 흔들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지표가 되는 그를 쳐다보며
달려가던 이들이 방향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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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덴 공국 산림청 책임자였던 파를 폰 드라이스는
관할지 시찰을 위해 말이 아니라
사람이 움직이는 탈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나무로 만든 작은 마차 바퀴 두개를 앞뒤로 연결하고
연결한 나무 위에 쿠션 안장을 올렸습니다.
그리곤 올라타서 발로 지침으로써
앞으로 나아가는 물건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따 ‘드라이지네’
또는 ‘벨로시페드’라 불렀고
바덴공국과 프랑스의 특허권을 획득했습니다.
하지만, 브레이크가 없어
내리막길에선 엄청나게 속도가 붙어
사고가 나기 쉬웠고,
구동장치가 없어 오르막길을 오를때는
밀거나 들고 가야 했습니다.
이 최초의 자전거를 본 기계공들은
여기에 브레이크를 만들어 붙이고,
페달 등 추진체를 개발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드라이스는
‘발차기 추진방식’만이 이 자전거의 핵심이라고 우기며
페달 등 추진체를 붙이는 것에 끝까지 반대했습니다.
결국 1867년 프랑스의 피에르 미쇼가
앞바퀴에 페달이 달린 ‘페달식 벨로시페드’를 제작했고
이 두바퀴 탈것에 ‘바이시클’(bicycle)이란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세상은 가만히 나눠도 굴러갑니다.
새로운 생각과 더 나은 발전에 눈을 두지 않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만 고집한다면
결국 자신의 발로 브레이크를 잡는 꼴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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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봇대 밑을 지나가는데
오백 원 짜리 동전이 반짝 눈에 뜨입니다.
주변을 슬쩍 둘러보니 아무도 없네요.
허리를 굽혀 주우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들리는 낮은 목소리.
“이 노옴~.”
깜짝 놀라 사방을 둘러봐도 목소리의 주인공은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잘못 들었나?
냉큼 동전을 주워 호주머니에 넣는 순간
화가 잔뜩 난 목소리가 내려 꽂혔습니다.
“이 놈아, 동전 도로 내놓지 못해!”
동전의 주인은
전봇대 위에 계셨습니다.
이 싱거운 농담 끝에 목사님은
‘사방이 꽉 막혔을 땐 위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정글이든, 사막이든, 골목길에서든
길을 잃었을 때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지도가 엉터리일 경우도 있고, 나침반이 뱅뱅 돌 때도 있지요.
정말 믿을 놈 하나 없습니다.
그럴 땐 불문곡직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게 상책입니다.
인생의 미로에서 출구가 안보여 애가 닳을 때
답답해서 똑 죽겠다 생각이 들 때
사면초가라더니 지금이 그렇구나 싶을 때
문득 고개 들어 하늘을 보십시오.
그리고 저 높은 곳에 있는 분께 길을 물어 보십시오.
위에서 내려다 보면
다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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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지금 하는 일에 대해 상상을 한다.
지금은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해도 지금은 바보 같은 일이라 할 지라도
아직 30대라서 시작한 일이다.
이 작은 소망이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고 누군가에게 꿈이 되었으면 한다.
Data와 정보가 너무나 많아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알고 사용하는 것이 어려운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2006년에 돌아가신 드러커 박사"의 이야기 처럼 미래는 지식 자본가의 시대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 자신의 프레임 즉 패러다임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을 한다. 그래서 깊은 통찰을 젊은 나이에 하기 힘든 것 같다.
어른들은 노하우 경험이라고 하는데 정보가 지식 되기 위해서는 경험이 필요하다. 물론 그 지식을 어떻게 유용하게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지혜역시 경험을 통해 이루어진다.
인터넷에 수 많은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그 것을 자신의 경험과 필요에 따라 재설정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미래 네트워커" 부른다. 단순한 경험의 지식이 있는 한 사람이 아닌 선한 방향을 결정하고 함께 노력하고 상상할 때 그 지식은 1인의 능력을 위해 사용되는 부의 창출 수단이 아닌 사람을 키우고 만들어 낼 수 있는 도구가 된다.
2010.3 나는 상상한다.
사람과 사람을 연합하고 사람을 살리는 지식의 네트워킹을 꿈꾼다. 학문을 통한 정보습득을 위한 지식이 아닌 저 어두운 곳에 작은 빛이 될 수 있는 사랑의 온기가 살아있는 어린 시절 주머니 속 난로와 같은 지식허브를 꿈꾼다.
그리고 믿는다. 분명 이 꿈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을 만나고 또 지식으로 인한 새로운 꿈을 향해 노력하며 그렇게 내 안에 작은 빛 그리스도의 진리의 사랑을 전하며 살아갈 것이다.
아...
정말 그 미래가 이제 멀지 않았구나...
함께갈 친구가 있어 행복한 오늘이다.
그리고 내일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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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출처 : http://www.compassion.or.kr/letter/sosik_200908_02.as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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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평균 하루에 100명이상의 사람들을 만나고 스쳐지나가는 자신의 시선과 기억속에 자리를 잡을 기회가 있다고 한다.
그러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알고 지내고 있는가?
우리나라 속담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말은 다시 생각하면 그 만큼 한 사람을 알아가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온전히 알아야 믿을 수 있는데... 사람은 사람을 온전히 알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은 사람을 사랑하는 존재로 창조하셨는지 모르겠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온전히 알기 위해선 100배의 섬기이 있어야 한다.
어떤 것을 계산하지 않은 값 없는 섬김을 통해 그 사람 마음 속 감정계좌에 많은 저축을 해야 할 것이다.
섬길 수 있다는 것은 특권이다.
섬김은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나 은사를 남들보다 빨리 발견한 사람들이 성령님의 은혜로 할 수 있는 하나님의 긍휼이기 때문이다. 그 하나님의 긍휼이 낮아진 한 사람을 통해 세상을 섬길 때 잃어버린 영혼들이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일 아침에도 수 많은 사람들을 또 만나고 이야기하며 나의 기억과 시선속 내 안에 잣대를 가지고 평가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 이 밤 겸손히 기도한다.
온전히 내가 낮은 자의 모습으로 섬길 수 있었으면 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처럼
그리스도의 보혈처럼
그리스도 그 이름의 능력처럼
감사함으로 순종함으로 사람들의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 사이에 선한 통로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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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주일학교 교사를 할 때 일이다.
우리 반 아이 한 명은 학교에 가는 것이 너무 무섭고 싫다고 하소연 한 일이 있다.
그 녀석은 선생님이 늘 자신을 너무 힘들게 하고 미워한다며 불평을 자주 했다. 불평의 핵심은 반 아이들 앞에서 자신을 대상으로 비교하거나 놀리는 일이 많았다는 것이다. 물론 그 녀석 담임선생님을 만나지 않아서 정확한 사실은 모른다.
하지만 그 녀석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역시 녀석처럼 어린 시절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내면에 자리 잡았던 자존감은 주변 환경과 사람들의 평가로 아주 중대한 위기를 맞이했던 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지금은 초등학교 한 반에 30명 이내로 아이들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내가 어릴 때는 한 학급당 학생수가 60~70명이고 수업도 오전, 오후로 반을 나누어 진행 했다.
그 당시 선생님 한 분이 반 전체 아이들의 특성과 개성을 명확히 알고 아이들의 강점을 살리는 교육은 절대 불가능한 환경 이었다.
이런 환경에 초등학교 입학 후 어느 날 담임 선생님께선 칠판 필기가 늦었다고 때리셨다. 선생님께선 필기가 늦은 아이들은 모두 잡담을 하거나 장난을 치다가 필기를 못한 것으로 판단하시고 채벌하신 것이다.
일례로 초등학교 3학년 선생님은 신학기 첫 시간에 신발 주머니를 제자리에 놓여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때리셨다.
사실 신발장에 신발주머니를 제자리에 놓지 않은 녀석은 2학년 때부터 같은 반 이였던 급우 정진우라는 친구였다.
진우 녀석이 늦게 와서 내 신발 주머니를 치우고 자신의 신발주머니를 놓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임신 중이고 신학기 첫 날 무엇인가 단단히 화가 난 선생님께선 아이들 앞에 본보기로 나를 선택하셨던 것 같다. 지금도 선생님으로부터 손바닥을 맞을 때 미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진우의 눈빛이 생생하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건강하고 명랑한 아이지만 같은 또래 집단 남자아이들이 바라보는 내 모습은 매우 달랐다.
얼굴은 눈이 커서 "개구리 왕눈이", 머리가 다른 친구보다 커 보인다고 "모여라 꿈동산", 몸이 뚱뚱해서 달리기를 못한다고 "느림보 뚱보" 등 수 많은 별명을 부르며 놀렸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학교수업 중 체육시간이 너무나 싫었고, 필기가 빠르고 그 양이 많은 선생님 수업 역시 마음속에 너무나 큰 부담이 되었으며. 이 후 중, 고등학교 생활 역시 소극적인 학생으로 학교 규칙을 따르며 어떤 특별함도 없이, 꿈과 희망도 없이 책가방만 가지고 왔다 갔다 이렇게 초,중,고 12년의 정규 교육을 마무리 했다.
하지만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나를 주변 환경과 사람들의 평가에 상관 없이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I Praise you because I am fearfully and wonderfully made;
your works are wonderful I know that full well.”
- Psalm 139:14 –“
한글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내가 주를 찬양합니다. 이는 내가 신기하고 놀랍게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하신 일들은 놀랍습니다. 나는 그것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시편 139:14 –
시편 139편 작가는 창조주를 찬양하는 이유는 창조주가 나를 신기하고 놀랍게 지으시고 내가 창조주의 특별한 목적 가운데 창조된 걸작품이며 나를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창조주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는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있다.
시편 작가의 믿음의 고백이 내 마음에 믿음으로 다가와서일까?
초.중.고 시절 한 교실에 60~70명의 학생이 도저히 개성을 발휘 할 수 없고 창의성이 인정되지 않는 교육 안에서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던 마음에 시편139편 말씀은 새로운 생명을 얻은 것과 같이 큰 원동력이 되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직도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하늘에 별, 태양의 존재, 지구의 자전과 공전, 정확한 낮과 밤의 변화 등 자연의 무한한 질서와 생명은 도저히 인간이 알 수 없는 신비함 그 자체이다.
"세상에 사람이 발명한 모든 발명품은 발명가의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또한 발명품의 내부가 정밀하고 견고할수록 발명품은 설계도가 존재하고 아울러 발명가는 설계도 작성을 위해 특별한 목적과 성공적인 발명을 위해 준비를 했을 것이다." 란 생각을 통해 나 자신이 발명품이라면 적어도 같은 사람에 의해서는 창조되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따라서 주변환경이나 사람들의 평가가 나의 삶에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 후 내 삶은 더욱 창의적이고 열정적으로 변화 되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긍정적인 요소들이 살아나기 시작하면서 유년시절 겪은 두려움과 상처가 더 이상은 나를 지배할 수 없었다.
내 삶에 주도권 회복을 통해 불평이 많았던 주변환경과 주위 사람들의 평가가 오히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특별한 목적을 위해 예비된 환경이며 감사함으로 감당할 수 있는 연단의 코스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모든 생명 특히 사람들은 특별함과 자신이 모르는 미래의 예비하심의 은혜로 지금 이 순간에도 숨쉬고 생활 할 수 있는 것이다.
특별함과 예비하심으로 이 시간에도 일하고 계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내일 아침부터는 현관 문 거울 앞에서 큰 소리로 외쳐야겠다.
"나는 신기하고 놀라게 만들어진 탁월한 사람이다.
오늘도 화이팅." 이라고 선포하며...
이렇게 하루를 감사함으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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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주일 아침이다.
평상시 주일 아침처럼 나의 딸 하늘이를 유아 예배실에 보내고 우리 부부는 부지런히 예배가 시작 되는 본당으로 달려갔다.
목사님께서는 평소와 달리 성경 본문이 아닌 이야기를 시작 하셨다.
"옛날 어느 부자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어느 날 동생이 아버지에게 찾아와서
어차피 물려줄 것, 아버지의 재산 중에서 절반을 미리 자기에게 지금 떼어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리고는 그 유산을 가지고 다른 나라에 가서 흥청망청 살게 됩니다.
하지만 돈은 얼마 안 있어 떨어지고, 돈이 없어진 그는 이리저리 흘러 다니다가
자기의 비참한 삶을 보고는 회개하게 됩니다.
"내가 아버지의 집에서 있었을 땐 얼마나 좋았었나..
아버지의 종들도 지금 나보다는 더 괜찮을 텐데.."
그리고는 자기 아버지에게 되돌아갈 생각을 합니다.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아버지에게 찾아가서 자기를 아들로 대우해주지 말고, 종으로 대우해 달라고 말하려는 계획을 갖고, 고향으로 되돌아갑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아버지는 이제나 저제나 집 떠난 아들이 언제 돌아올까..
매일같이 마을어귀에서 아들을 기다리다가.. 저 멀리서 비참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아들을
발견하고는 뛰쳐나가 얼싸 앉으며 기뻐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종으로 대해달라는 아들에게 오히려 하인들에게 일러 큰 잔치를 베풀어 주었습니다."라는 신약 성경에 나오는 탕자의 이야기를 옛날 이야기처럼 시작하시며 "여러분이 잘 아시는 탕자 이야기 입니다.
이 이야기는 작은 아들과 아버지의 입장을 시각에 따라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하셨다.
오늘은 설교 말씀을 듣고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와 죄에 대한 자신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그런데 오늘 아침 목사님을 설교를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탕자처럼 집을 나간 일이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해 보니 한 두 번 정도 되었던 것 같다.
처음은 초등학교 입학 전 눈 내리는 추운 겨울 동생과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싸운 일이 있었다. 아버지께서 퇴근하신 것도 모르고 우리는 서로의 목소리를 높이며 정신 없이 싸우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보신 아버지께선 갑자기 너희들 계속 싸울 거면 나가서 싸우라고 하시며 우리에게 옷을 벗으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옷을 벗으라고 해서 벗었는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싸우는 자식은 필요 없으니 밖으로 나가서 싸우라고 했다. 벌거벗고 나간 우리 형제는 동네 사람들이 볼까 봐 집 밖 창고 뒤쪽에서 추운 날씨 때문에 서로 안고 서 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 후 동생과는 싸우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두 번째는 중학교 시절로 기억 되는데 친구들과 전자 오락실에 가기 위해 돼지 저금통에서 돈을 꺼내 부모님 몰래 쓰던 어느 날 부모님께 그 범행 현장이 목격 되었다. 사춘기라서 일까? 평소 같으면 용서를 빌면 해결 될 일인데 마음과는 다르게 왜 내 돈도 내 마음대로 못 쓰게 하냐며 반항심으로 집을 나와 친구네 집에 가서 하루를 보낸 적이 있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몇 번이나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반항하고 싶은 마음에 참고 참았던 기억이 있다.
두 번 모두 내가 잘못해서 생긴 일이고 어찌 되었든 두 번다 집을 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이전 어린 시절과 중학교 때 나의 태도는 너무나 달랐다. 절대적으로 부모님을 의존하던 초등학교 이전에는 죄에 대해 회개의 눈물과 용서를 빌고자 하는 태도가 명확하고 솔직했다. 하지만 무엇인가 스스로 할 수 있다는 나이가 되었을 때 죄에 대한 나의 태도는 너무나 달랐다.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과 분명 잘못한 일인데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과 행동이 앞서 심지어 집을 스스로 나와 친구네 집에 도망가는 비겁하고 정직하지 못한 태도를 보이게 되었다.
물론 감성과 넓은 이해심으로 어릴 때는 그럴 수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 목사님께서 설교시간에 말씀하신 죄에 대한 나의 태도는 옳지 못한 태도를 보인 것이 사실이다.
위 이야기에서 작은 아들은 무리한 요구를 아버지에게 하고 그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죄책감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다가 끝내 고개를 숙이고 집으로 돌아온다.
만약 작은 아들이 죄를 발견했을 때 조기에 회개하고 돌아 왔으면 그런 고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명확한 내 잘못이고 죄인데 즉시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100% 내 잘못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억울한 사연을 이야기하며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당장은 억울해도 변명하는 태도는 죄에 대해서 명확하고 단호한 태도가 아닌 것이다.
죄를 인정하고 솔직함으로 용서를 구하고 죄를 멀리하는 태도가 내 삶에서 필요한 것이다.
세상 어떤 사람도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자신의 욕심과 실수로 생긴 죄가 있다면 그 죄에 대한 태도는 올바르게 행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그것은 사람이 죄의 유혹과 핍박 속에서 살아가는 인생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이야기 보다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 하라는 말씀이 많다. 수 많은 죄에 대해 태도는 거룩함과 단호함이기 때문이란 생각을 하며 목사님께서 던지신 질문에 대한 묵상을 마무리 해 본다.
오늘 설교 속에 탕자의 본명은 바로 나 인 것 같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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